회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 샤이비츠는 회화적 내러티브와 서사성을 부정적인 특성으로 제시하며 거의 모욕과도 같은 것으로 표현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떠한 이미지를 이야기로 다시 전할 수 있다면, 그 이미지는 상실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표현 방식은 희망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예술적 방법론 또한 품고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어떤 이미지가 더는 서술되거나 이야기로 다시 전해질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상실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샤이비츠에게 이미지란 그것을 더 이상 서술할 수 없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듯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 창출 과정은 포토샵 도구 상자를 활용해 이미지를 처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추상화라는 용어를 진지하게 바라보면, 추상은 결코 비재현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추상화함으로써 비재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절차는 추상과 구상,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인지되는 현실에 대한 의심 등 모든 면에서 균형을 잡는 행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