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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 ㅣ 시어무형(視於無形) 청어무성(聽於無聲): 생명과 존재를 향한 회화적 사유
학고재는 2026년 9월 23일(수)부터 10월 24일(토)까지 이이남(1969-)의 개인전 《시어무형(視於無形) 청어무성(聽於無聲): 생명과 존재를 향한 회화적 사유》을 연다. 2009년 이후 학고재에서 다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동안 이어온 ‘이미지 변환’ 연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지가 맺히기 이전의 움직임과 생명 자체로 시선을 돌린다. 이는 이미지가 태어나기 전의 상태를 되짚는 작업으로의 이동이다. 이이남은 기술을 매개로 감각의 범위를 넓혀온 실험을 바탕으로, 눈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생명체의 움직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다양한 매체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자리로 관람객을 이끈다.
‘시어무형(視於無形) 청어무성(聽於無聲)’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고, 소리 없는 것에서 듣는다’는 옛 경구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한다”고 말하는 ‘시편 19편’의 구절과도 맞닿아 있다. 감각으로 직접 포착되지 않는 존재를 보고 듣는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눈에 담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존재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의 지각이 다다르지 못하는 지점에서도 무수한 생명과 물질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이이남은 용소폭포에서 직접 물을 채집해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육안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었던 미시의 영역과 마주한다. 용소폭포에서 시작해 영산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생명의 근원을 바라보는 출발점이자 작가 자신의 뿌리를 되짚는 장소다. 한 방울의 물속에서 태어나 움직이고 소멸하는 작은 생명의 흔적을 따라가며, 생명의 기원과 존재가 어디에서 와 어디로 향하는지를 질문한다. 확대된 유기체의 형태와 이동, 그리고 군집이 그려내는 선의 자취는 마치 산맥의 능선을 연상시킨다. 때로는 유려하게 흐르거나 구름과 안개처럼 흩어지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낯익은 표면을 깊이 파고들수록, 세포와 입자로 이루어진 또 다른 결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산수(山水)’를 해석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이때 산수는 완결된 풍광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진 형상에는 미세한 움직임과 물질의 변화, 빛과 시간 등 쉽게 감지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함께 자리한다. 거시와 미시는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서로 다른 척도에서 들여다볼 때 나타나는 여러 층위에 가깝다. 작가는 전통 회화의 도상과 현미경으로 포착한 미세한 형태를 교차시키며, 우리가 흔히 ‘풍경’이라 불러온 대상의 이면을 탐색한다. 멀리서는 산과 능선으로 읽히던 화면이 가까이에서는 수많은 개체와 입자의 자취로 흩어지고, 크기와 거리에 따라 상이한 면모를 드러낸다.
전시 제목의 ‘형상 없음’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아직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되기 이전의 상태, 유동적인 순간을 뜻한다. ‘소리 없음’ 역시 완전한 침묵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청의 문턱을 넘어선 곳에서도 파동은 이어지며, 감각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현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눈과 귀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간이 포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실재를 규정해 온 시각에 균열을 낸다.
《시어무형(視於無形) 청어무성(聽於無聲): 생명과 존재를 향한 회화적 사유》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단순히 확대하거나 가시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집요한 탐구에서 시작된 물음은 인간과 비인간을 비롯해 자연과 기술이 서로 얽히며 빚어내는 관계망으로 뻗어 나간다. 미시의 결로 깊이 들어갈수록 오히려 사유의 지평은 확장된다.
이이남에게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고, 소리 없는 것에서 듣는’ 행위는 익숙한 감각의 테두리를 벗어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존재까지 시야에 담으려는 태도이다.


